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문단 편집) === 미국에서의 새 출발과 마지막 === 1937년 12월 25일, 70세의 노장은 망명지에서 [[NBC]] 방송국 소속의 [[NBC 교향악단]]이라는 새로운 방송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되어 17년간 지휘 생활의 전성기 겸 후반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것도 모자라 90세부터 10년동안 녹음할 계획도 짰다고 전해진다. 정작 만 나이 기준으로는 90세도 못 채우고 죽었지만.] 1946년에는 무솔리니가 실각한 고국에 오랜만에 돌아와 5월 11일에 폭격으로 파괴된 라 스칼라 극장에서 개관 기념 콘서트를 지휘했다. 1948년 3월 20일 오후 6시 30분에는 바그너의 작품들만으로 구성된 [[텔레비전]] 실황 중계 연주회를 지휘하기도 했고,[* 토스카니니는 이후 1952년 3월 22일에 있던 연주까지(문서 최상단의 연주가 바로 토스카니니의 마지막 텔레비전 중계 실황이다.) 9개의 텔레비전 실황 중계 영상을 추가로 남겼다.][* 사실 같은 날 오후 5시부터 유진 오먼디(Eugene Ormandy, 1899~1985, 헝가리 출신인 미국의 명지휘자)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텔레비전 중계 연주회를 먼저 연주했기 때문에, 미국 최초 텔레비전 실황 중계를 연주한 지휘자는 토스카니니가 아니라 오먼디가 되었다.] 1952년에는 라 스칼라 극장과 영국의 신생악단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유럽에서 마지막 지휘 활동을 했다. 참고로 NBC 교향악단 시절에는 연주홀로 쓰던 NBC 8H 스튜디오는 원래 라디오 방송용으로 설계된 곳이었고, 음악회용 스튜디오로 만든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잔향이 매우 적어 음향이 매우 건조했다고 한다.[* 다만 1942년에 있었던 일부 리모델링 덕분에 잔향이 조금 더 추가되었다고 한다.] 특히 NBC 교향악단의 초기 녹음에서의 음향은 매우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1940년을 기점으로 NBC 교향악단의 대부분의 음반 제작은 8H 스튜디오가 아닌 [[카네기 홀]]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국 8H 스튜디오는 1950년에 TV 스튜디오로 전환되고 이후 NBC 교향악단의 연주회는 카네기 홀 위주로 이루어진다. 정작 토스카니니 본인은 청중이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더욱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고 이 스튜디오를 선호했다고는 하지만.[* 참고로 일본어 위키피디아발 정보에 따르면, 통상의 홀에서 방송되었을 경우 잔향 때문에 소리가 탁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과 달리, 8H 스튜디오의 음향은 당대 라디오로 방송하면 '원만한' 사운드로 변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8H 스튜디오를 고집했던 것일 수도 있다.] 1954년 4월 4일, [[카네기 홀]]에서 바그너 음악 연주회를 평소처럼 악보 없이 지휘하던 토스카니니는 탄호이저 서곡을 연주하다가 일시적으로 실신하며 갑자기 지휘를 멈추고 30초 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사태가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브람스]] 교향곡 1번이 땜빵으로 나갔다고 하며, 다행히 정신을 차려서 나머지 연주는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그는 박수를 뒤로 하고 비틀거리며 사라졌고 공식 무대에서 다시는 [[지휘봉]]을 잡지 않았다.[* 참고로 토스카니니는 이미 이 연주회를 열기 10일 전인 3월 25일에 슬슬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토스카니니의 연세가 87세였기 때문에'''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이 시기쯤 해서 토스카니니는 자연스럽게 은퇴했을 것이다. 물론 이 사고가 은퇴를 하게 되는 결정타이긴 했지만.] 연주회 직후 공개된 은퇴 성명에는 '마지못해 지휘봉을 내려놓고 오케스트라와 작별해야 할 슬픈 시간이 왔다'고 적혀 있었다.[* 이 날 연주회는 통째로 녹음되어서 유튜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토스카니니는 동년 6월에 가면무도회와 아이다[* 1949년 3월 26일과 4월 2일에 있었던 [[텔레비전]] 중계 실황 녹음이 원본이었다.]의 녹음 과정에서 불만족스럽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다시 녹음했고, 이를 끝으로 토스카니니는 지휘봉에서 완전히 손을 놓게 된다. 한편, 토스카니니는 1951년에 54년간 동고동락했던 아내 카롤라를 잃은 상태였고, 이후 토스카니니는 뉴욕의 집에서 아들 발터와 함께 발매 가능한 녹음을 선정하고 편집하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말년의 토스카니니는 텔레비전으로 권투와 레슬링, 후술할 성격과는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기며 유유자적하게 살다가 1957년 새해 첫날에 뇌혈전의 발작을 일으켰고, 1월 16일에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시신은 고국으로 옮겨져 [[밀라노]]의 가족 묘지에 매장되었다. 한편 토스카니니의 은퇴 후 심포니 오브 디 에어(Symphony of the Air)로 개칭한 NBC 교향악단은 1954년 10월 27일에 [[카네기 홀]]에서 연 첫 연주회에서 토스카니니를 추모하기 위해 지휘자 없이 악장만의 수신호로 모든 프로그램을 연주했다는 감동적인 일화를 남겼고, 이후 [[도이치 그라모폰|DG]]나 [[RCA 레코드]] 등에서 수많은 녹음을 남겼으며, 1955년 중반에는 아시아 투어를 가 [[일본]]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년 5월 25일에는 당시 최빈국 신세였던 [[대한민국]]에도 내한하는 등[* 당시 공연에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를 포함한 13,000명이나 되는 한국인이 관람했다고 한다.]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63년에 해체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